1943년 10월, 보내지 못한 편지
작전이 사흘 앞으로 왔다.
나는 탁자 앞에 앉았다. 종이가 있었다. 붓이 있었다. 잉크가 있었다. 다 있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으로 상하이의 밤이 있었다. 구월이 지나고 시월이 됐다. 아직 따뜻한 밤이었다.
편지를 써야 했다. 아내에게. 아이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건 달랐다.

붓을 들었다.
아내에게.
썼다. 거기서 멈췄다.
무엇을 써야 하나. 잘 있느냐고. 아이는 잘 있느냐고. 밥은 먹느냐고. 그런 말들. 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나머지는 쓸 수 없었다. 지금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돌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 쓸 수 없었다.
아이 이름이 준서였다. 다섯 살이었다. 아니, 지금은 여섯 살이 됐을 것이다. 생일이 칠월이었다. 내가 떠난 뒤였다. 생일에 곁에 없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한 게 두 살 때였다. 그때 나는 옆에 있었다. 아이가 아버지라고 처음 불렀을 때. 아버지. 세 글자.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었다. 아부지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상하이에서 이십 개월이 지났다. 아이가 지금 어떤 목소리인지 모른다. 어떻게 컸는지 모른다. 키가 얼마나 됐는지. 어떤 표정으로 웃는지.
아내의 편지는 달마다 왔다. 처음엔 왔다. 중간에 끊겼다가 다시 왔다. 아이는 잘 있다고 했다.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아이가 아버지 어디 갔냐고 묻는다고 했다. 먼 곳에 일하러 갔다고 했다고. 언제 오냐고 묻는다고. 곧 온다고 했다고.
곧.
나는 그 편지를 읽고 접었다. 서랍에 넣었다. 꺼내지 않았다.
붓이 움직였다.
준서야.
아이 이름을 쓰고 나서 오래 봤다.
준서야. 이 종이가 아이에게 닿을 것 같지 않았다. 보낼 수가 없었다. 편지가 가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진다. 알려지면 찾아온다. 찾아오면 이 도시에서 이 일을 하는 나를 보게 된다.
보여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잘 있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거짓말이었다.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잠을 자기 어려웠다. 눈을 감으면 사흘 뒤가 떠올랐다. 창고. 폭약. 남쪽 골목. 오십 미터.
곧 돌아갈게.
이것도 거짓말인지 몰랐다.
붓을 내려놨다. 종이를 봤다.
준서야. 아버지는 잘 있어. 곧 돌아갈게.
세 문장이었다. 다 거짓말이거나 확실하지 않은 말이었다.
작전을 생각했다.
그 창고에서 나오는 돈이 무엇을 하는지 나는 알았다. 아편을 판 돈이 군자금이 되고, 그 일부가 밀정을 키웠다. 조선 사람을 사서 조선 사람을 팔게 하는 데 쓰였다. 작년에 학수와 같이 일하던 동지가 그렇게 잡혔다. 같은 조선 사람이 일본에 넘긴 것이었다. 그 사람을 산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창고였다.
그래서 막아야 했다. 창고를 태우면 돈줄이 끊긴다. 돈줄이 끊기면 사람을 사는 손이 잠시 멈춘다. 그 잠시가 누군가를 살린다. 멀리 있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그런데.
오십 미터.
창고에서 남쪽 골목 주택까지. 세 채.
학수는 괜찮다고 했다. 폭약 양을 최소로 하면 된다고. 오십 미터면 충분하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오십 미터가 충분한지. 계산으로는 충분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까이 있는 한 사람과 멀리 있는 여럿. 눈앞의 불 켜진 창 하나와, 그 돈에 팔려갈 이름 모를 사람들. 어느 쪽이 맞는 계산인지. 나는 답을 알지 못했다. 답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탁자 위의 편지를 다시 들었다.
준서야. 아버지는 잘 있어. 곧 돌아갈게.
이 편지를 보낼 수 없었다. 대신 접었다. 주머니에 넣었다.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주머니에 갖고 다니기로 했다. 사흘 뒤 작전이 끝날 때까지. 작전이 끝나면. 그다음은 모르겠었다.
창밖을 봤다. 불빛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자고 있었다. 그게 누구인지 몰랐다. 사흘 뒤에도 자고 있기를 바랐다. 바란다는 게 충분한지 모르겠었다.
붓을 집어 들었다. 새 종이를 꺼냈다. 이번엔 아이에게 쓰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썼다.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아야 한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도.
썼다가 봤다. 다시 접었다.
창밖의 불빛이 흔들렸다.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