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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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태준

기록에 없는

혼자 남은 첫날이었다.

숙소에서 나와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물만 들고 걸었다. 어디로 갈지는 정해져 있었다. 전날 밤 검색창에 남겨둔 단어 때문이었다.

박성재. 상하이. 1943년.

검색창에는 엉뚱한 결과들만 나왔지만 상하이와 1943년 라는 검색어는 상하이 황푸구 마당루가 검색되었다.

루쉰공원
루쉰공원 — 옛 훙커우공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박성재가 거기 있을지 몰랐다. 1943년 상하이에 있던 한국 사람이라면. 혼자 남았고 한국 이름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갈 만한 곳은 거기뿐이었다.

지하철을 탔다. 황푸구 방향. 안이 붐볐다. 출근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폰을 보거나 눈을 감거나 허공을 봤다. 태준도 손잡이를 잡고 창밖을 봤다. 터널 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마당루역에서 내렸다. 지도를 보며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섰다. 관광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입구가 작았다. 생각보다 작았다. 삼층짜리 벽돌 건물. 외관은 주변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구 앞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한국 관광객 몇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태준은 그 옆에 서서 건물을 봤다.

여기서 사람들이 살았다. 나라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이 좁은 건물 안에서 회의를 했고 밥을 먹었고 싸웠다. 백 년 전이었다. 백 년 전 이 건물이 지금도 있다.

표를 샀다. 안으로 들어갔다.

일층부터 천천히 봤다. 복도가 좁았다. 당시 임시정부 요원들이 쓰던 방이 재현되어 있었다. 작은 책상, 낡은 의자, 문서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들. 설명 패널이 한국어와 중국어와 영어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임시정부 수립. 상하이에서 시작된 독립운동. 학교에서 배운 이름들이 패널에 있었다. 알고 있었다. 배웠다. 시험에 나왔다. 그런데 이 좁은 건물 안에서 보니 달랐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여기 있었다는 것. 이 낮은 천장 아래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전시된 인물 기록들이 있었다. 사진과 이름과 약력이 패널로 이어졌다. 태준은 천천히 걸으며 이름들을 봤다. 박이라는 성이 여럿 있었다. 박은식. 박찬익. 박시창.

박성재는 없었다.

태준은 한 번 더 천천히 걸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패널 하나하나. 이름 하나하나. 없었다.

삼층으로 올라갔다. 거기도 봤다. 기록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문서, 회의록, 서신들.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된 것들. 태준은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글씨들을 들여다봤다. 박성재라는 이름은 없었다.

옥상 테라스에 앉았다. 없다. 임시정부 기념관 어디에도 박성재라는 이름이 없었다.

처음엔 확인이 됐다고 생각했다. 관련 없는 사람이구나. 같은 성의 다른 사람이구나. 그렇게 정리하고 돌아가면 됐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지지 않았다. 1943년 상하이의 한국 사람이 임시정부와 아무 상관이 없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이 있었다면 어딘가 흔적이 있어야 했다. 여기 없으면 다른 데 있을지도 몰랐다.

폰을 꺼냈다. 검색했다. 상하이 독립운동 유적지. 몇 군데가 나왔다. 그중에 공원이 하나 있었다. 의거가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루쉰공원이라고 불렸다. 안에 기념관이 있다고 했다.

태준은 거기로 갔다.

공원은 넓었다. 노인들이 태극권을 하고 있었다. 새장을 들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연못이 있고 다리가 있었다. 평화로웠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안쪽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매원이라고 했다. 의거를 한 청년을 기리는 곳이었다. 기념관이 있었다. 들어갔다. 그 사람의 생애가 패널로 정리되어 있었다. 사진. 편지. 짧은 생애. 스물네 살에 죽은 사람이었다.

태준은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기록된 사람이었다. 이름이 있고 사진이 있고 편지가 있고 기념관이 있는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이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 옆에서 박성재를 생각했다. 사진 한 장. 뒷면에 흘려 쓴 세 글자. 그게 전부인 사람. 기념관도 패널도 없는 사람.

여기에도 박성재는 없었다. 당연했다. 기록된 사람을 위한 곳이었으니까. 박성재는 기록된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관을 나오면서 웨이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박성재를 중국어로 어떻게 검색해요."

"朴成材, 이렇게 될 것 같아요. 근데 한자 이름이 따로 있을 수 있어요. 검색해줄까요?"

"네."

오 분쯤 뒤에 답장이 왔다.

"안 나와요. 바이두에서도 없어요."

태준은 폰을 봤다. 없다. 한국에서도 없고 중국에서도 없고. 임시정부 기념관에도, 의거의 공원에도 없었다.

사진 속에만 있는 사람. 웨이린 할아버지의 유품 속에만 있는 사람.

공원을 나왔다. 큰길로 걸었다. 차들이 지나갔다. 도시는 거대했고 사람은 많았다. 그 안에 박성재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1943년에 이 도시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름 하나를 들고 하루 종일 걸었는데, 그 이름이 닿는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