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폰이 울린 건 큰길로 나왔을 때였다. 어머니였다.
태준은 잠깐 화면을 보다가 받았다.
"네, 어머니."

"아직 상하이니?"
"네."
“여행을 오늘까지 간다고 한 것 아니었니? 왜 안와?
차들이 옆으로 지나갔다. 경적 소리가 짧게 울렸다. 태준은 길가에 멈춰 섰다.
"그냥…… 조금 더 보려고요."
"무엇을?"
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뭘 보고 있는지 자신도 정확히 몰랐다. 기념관. 공원. 골목. 사진. 이름.
"사진을 하나 봤어요."
"무슨 사진?"
"여기서 만난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 할아버지 유품 속에 한국 사람 사진이 있었어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한국 사람?"
"네. 1943년 상하이라고 적혀 있었고요. 이름도 있었어요."
"이름이 뭔데."
태준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박성재요."
그 이름을 말하자 차 소리가 잠깐 멀어지는 것 같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들렸다.
"어머니?"
"……아니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네? 뭐가요."
"아니야. 흔한 이름이잖아. 박씨가 한둘이니."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흔한 이름이라고 하면서 흔한 이름을 듣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머니. 그 이름 아세요?"
"……그 사진 어디서 났다고?"
대답을 피하는 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같은 걸 다시 물었다. 처음부터 듣지 못한 사람처럼.
"웨이린이라는 사람 할아버지 유품이요. 상하이에서 찍은 거예요. 1943년."
어머니는 또 한참 말이 없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빨간색이 됐다. 사람들이 건너고 멈췄다.
"태준아."
"네."
"너 지금 어디라고."
"상하이 큰길이요.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삼키는 소리. 어머니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일요일 저녁마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 길게 끌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이름." 어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서."
"어디서요."
"……오래전에."
또 멈췄다. 태준은 기다렸다. 재촉하면 더 닫힐 것 같았다.
"네 아버지가." 어머니가 말했다. 거기서 또 끊겼다. "네 아버지가 상하이에서 태어났어."
태준은 멈췄다.
"무슨 말이에요?"
"어릴 때 잠깐. 아주 어릴 때. 네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적 있어. 자세히는 몰라. 네 아버지도 많이 말하지 않았고."
태준은 길 건너편을 봤다.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모두 자기 갈 곳이 있었다.
"그럼 박성재는……."
어머니가 한참 만에 말했다. 아주 낮은 목소리였다.
"……혹시 네 할아버지 아니냐."
말이 끝난 뒤에도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한 건 아니야." 어머니가 서둘러 덧붙였다. "나도 몰라. 그냥…… 그 이름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네 아버지한테였는지, 네 할머니한테였는지. 그것도 가물가물해. 근데 네가 그 이름을 말하니까 가슴이 덜컥했어.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박성재. 사진 속 가운데 남자. 1943년 상하이. 임시정부 기념관 어디에도 없던 이름. 그 이름이 갑자기 자기 쪽으로 걸어왔다. 아직 닿지는 않았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왜…… 한 번도 얘기 안 했어요? 할아버지가 상하이에 있었다는 거."
어머니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얘기할 게 있어야 하지. 나도 아는 게 없는데. 네 아버지가 별로 말 안 했어. 상하이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할아버지 얘기도. 그냥 지나가듯 한 번.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말 안 했어. 물어보면 표정이 안 좋아져서 나도 안 물었고."
"아버지는 알고 있었어요?"
"알았겠지. 자기 아버지니까."
자기 아버지.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아버지. 태준에게는 없던 자리. 빈칸으로도 생각해본 적 없던 자리.
"태준아."
"네."
"그 이름을 거기서 들을 줄은 몰랐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잠겼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해. 혼자 이상하게 다니지 말고."
"네."
"밥은 먹었고?"
"먹었어요."
거짓말이었다. 어머니도 아는 것 같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조심히 있어."
"네."
전화를 끊었다.
큰길에는 차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사람들이 건너고, 다시 멈췄다. 태준은 폰을 내려다봤다. 통화 종료 화면이 사라지고 검은 화면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귀뚜라미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떠올랐다. 눈매가 똑같다고 했다. 자기 눈가를 짚던 손. 그게 그냥 닮은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박성재.
입 밖으로 내지 않았는데도 이름이 들리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 사진 속 가운데 남자. 1943년 상하이의 그 남자. 어디에도 없던 이름.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모른다는 그 말이, 아니라는 말보다 더 무거웠다. 아니라고 했으면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모른다고 하니 끝나지 않았다.
확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