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린
입구는 평범했다. 유리문을 밀었다.
안은 서늘했다. 콘크리트 냄새. 커피 내리는 소리. 말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울렸다.
안은 밖과 달랐다. 통로가 사방으로 갈라졌다. 경사로가 층을 이뤘다. 기둥이 위로 갈수록 우산처럼 벌어졌다. 격자창으로 햇빛이 좁게 떨어졌다.
태준은 카메라를 들었다. 기둥을 찍었다. 빛이 떨어진 바닥을 찍었다.

통로 앞에 안내판이 있었다. 영어가 섞여 있었다. 소를 몰던 길이라고 했다. 완만하게 휘어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만든 길이라고 했다. 끝에서 도살이 이루어졌다고.
태준은 통로를 올려다봤다. 소들이 천천히 올라갔겠지. 무슨 일이 기다리는지 모른 채로. 그 위로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지나갔다. 웃고 떠들었다. 아무도 발밑을 보지 않았다.
태준은 셔터를 눌렀다. 화면에 통로가 들어왔다. 빛도 그늘도 들어왔다. 서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더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가 또 갈라졌다. 경사로가 또 휘었다. 한 층 올라간 것 같았다. 비슷한 기둥, 비슷한 그늘. 사람 소리가 멀어졌다.
폰을 꺼냈다. 지도를 열었다.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파란 점이 흔들렸다. 여기였다가 저기였다가.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어디야, 진짜."
혼잣말이 콘크리트에 울렸다.
"길…… 잃으셨어요?"
한국말이었다. 태준은 고개를 들었다.
통로 끝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노란 불빛. 여자가 행주를 든 채 서 있었다. 태준보다 작았다. 검은 머리를 묶었다. 발음이 조금 달랐다. 한국 사람은 아니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태준이 대답했다.
"나가는 길요? 아니면 어디 가세요?"
"어디 가는 건 아니고, 그냥 길을 잃었어요."
여자가 행주를 옮겨 쥐었다. 손가락으로 통로를 가리켰다.
"저기 계단으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큰 마당이 나와요. 거기가 입구예요."
"쎼쎼."
태준은 중국어로 대답했다. 여자가 웃었다.
"여행 오셨어요?"
"아…… 네. 친구들과요."
"친구들은요?"
"친구들은 다른 데 가고, 저만 혼자 왔어요. 사진 찍으러."
"사진이요? 기자세요?"
"아, 아뇨. 그냥 취미로."
"여기가 상하이에서도 손꼽히는 포토 스팟인데, 잘 찾아오셨네요."
"네."
그녀는 한국어를 잘했다. 태준은 그녀가 궁금했다. 그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쉬운 듯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여기 말고도 사진 찍을 곳은 많아요."
그녀가 들어간 카페 벽면에 커다란 소뿔이 달린 해골 장식이 있었다. 마치 이곳이 도살장이었다는 걸 잊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태준은 그녀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었다.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가니 큰 마당이 나왔다. 입구였다. 햇빛이 환했다.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밖으로 나가면 됐다.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가면 됐다.
그런데 태준은 입구 앞에서 멈췄다. 잠깐 서 있었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경사로를 다시 올랐다. 왜 올라가는지는 자기도 몰랐다. 발이 그쪽으로 갔다.
노란 불빛이 다시 보였다. 여자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태준은 그 앞에 섰다. 무슨 말을 할지 정하지 못한 채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요."
여자가 태준을 봤다.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 아이스요?"
"네…… 얼마예요?"
"38위안요."
태준은 주머니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건넸다.
"여기 50위안."
여자가 잔돈을 거슬러 주며 말했다.
"혹시 저 다시 보고 싶어서 온 거예요?"
태준의 눈이 커졌다.
"앗…… 아뇨. 아뇨."
부정하고 나서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여자를 다시 보고 싶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요?"
"아…… 상하이에 사진 찍을 곳 어디 있어요?"
"여행객들이 찍는 데는 많아요. 와이탄, 예원, 신톈디……."
"아, 네에."
침묵이 이어졌다. 태준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가운 아메리카노가 테이블에 놓였다.
"다음엔 따뜻한 걸로 마셔요." 여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네." 태준도 그 걱정에 답하듯 말했다.
"한국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대학에서요.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한국 노래를 흥얼거려서 흥미가 생겼어요."
무슨 노래냐고 물어볼 수 있었다. 묻지 않았다.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여기서 일한 지는 오래됐어요?"
"카페는 얼마 안 됐고요. 이 근처에 살아요." 손가락으로 통로 너머를 가리켰다. "태어나면서부터 이 근처에서 살았어요. 전공이 한국어예요. 한국은 한 번도 못 가봤지만요."
태어나면서부터.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 좁은 골목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태준은 수원에서 태어났다. 대학 때 서울로 왔다. 십 년이 넘었다. 아직도 서울이 집 같지 않았다. 이 사람은 다를까. 여기가 자기 공간 같을까.
"혹시 이름이……." 여자가 먼저 물었다.
"태준요. 박태준."
"웨이린." 여자가 말했다.
태준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따라 했다.
"웨. 이. 린."
발음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웨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와이탄이랑 예원은 어제 다녀왔어요. 친구들이랑."
"어땠어요?"
"사람이 많았어요."
웨이린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게 전부예요?"
"네."
"좀 이상하네요."
"자주 들어요, 그런 말."
이번에는 웨이린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었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그래도 굳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럼 사람 많은 데는 그만 가요."
"그럼 어디요?"
"관광지 말고요."
"상하이는 모두 관광지 아니예요?"
"있죠."
웨이린이 창밖 골목을 가리켰다. 자기가 태어나 자랐다고 한 곳이었다.
"진짜 상하이는 저기 있어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진짜…… 상하이." 태준은 그게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들어왔다. 카페는 어느덧 분주해졌다. 그 뒤로 웨이린과 더 이야기할 수 없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보니 몸이 추워졌다. 태준은 인사도 못 한 채 카페를 나섰다. 숙소가 있던 골목으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했다. 친구들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어제 못 잔 잠을 조용히 청했다.
"야, 박태준." 경환이가 불렀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눈을 감은 지 일 분도 안 된 것 같았는데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 승필이는 머리에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끼고 태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밥 먹으러 가자."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않아 배가 고팠다. 맛집 리스트를 가진 경환이가 앞장섰다. 훠궈집이었다. 넓고 시끄러운 곳이었다. 테이블마다 냄비가 끓고 있었다. 붉은 국물과 흰 국물이 반으로 나뉜 냄비였다. 김이 천장까지 올라갔다. 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기와 채소, 어묵 같은 것들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경환이가 끓는 국물에 고기를 넣었다.
"하오츠." 경환이 말했다. 중국어로 맛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오츠." 승필도 웃으며 따라 했다.
"그래. 하오츠."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난 태준도 한마디 했다.
"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더니 기분이 좋아졌냐?" 경환이 고기를 건지며 말했다.
"왜? 여자라도 만났어?" 승필이 궁금한 듯 물었다.
태준은 낮에 만난 웨이린을 떠올렸다. 그게 여자를 만난 건가 생각했다.
"여자?…… 글쎄." 태준의 대답에 경환이와 승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글쎄라니. 너 뭐야? 빨리 말 안 해?"
"아냐. 그냥 아무 일도 없었어."
친구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냄비로 손을 뻗었다.
"천천히 먹어. 갓 건진 거 바로 먹으면 입 덴다." 경환이가 말했다.
"그래."
태준도 붉은 국물에 고기를 데쳐 입에 넣었다. 뜨거웠다. 낮에 마신 차가운 아메리카노와는 달랐다. 매운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 속을 데웠다. 또 한 점 데쳤다. 끓는 국물에서 김이 계속 올라왔다. 넓은 식당은 사람으로 가득 차 시끄러웠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왔다.
"야, 우리 맥주나 마시자." 승필이 침대에 누워 태준을 보며 말했다.
"그래, 맥주 한잔하자." 경환이가 거들었다.
태준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은 어두웠지만 길은 익숙했다. 사거리에 있는 작은 슈퍼에 들어갔다. 냉장고에 맥주가 없었다.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맥주가 중국어로 무엇인지 몰랐다. 진열장을 살피다 맥주를 찾았다. 카스나 하이트는 없었다. 양꼬치집에서 가끔 보던 칭다오 맥주가 있었다. 여섯 병을 샀다. 안주거리를 찾았다. 새우깡과 비슷하게 생긴 과자가 있었다. 한국 과자인가 하고 뒷면을 보고 있었다.
"그거 한국 거 아니에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웨이린이었다.
낮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어나서 자란 곳. 웨이린의 골목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산다고 했다.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금 놀랐다.
"사진은 많이 찍었어요?"
"아뇨…… 그냥 잤어요."
"거봐요. 내가 차가운 커피는 안 된다고 했죠?"
커피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도 안 좋아 보였나 보다.
"내일은 뭐 해요?"
"내일요?"
내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 시간 되면 진짜 상하이 보여줄게요."
"네? 진짜 상하이……."
"네. 국물이 따뜻한 맛집도 있어요.“
"네……."
승필이와 경환이가 내일 뭘 할지는 몰랐다. 단톡방에 일정이 올라왔지만 보지 않았다.
"내일 점심때 카페 앞에서 만나요."
"일은요?"
낮에 카페에서 일하던 웨이린이 떠올랐다.
"내일은 쉬는 날이에요."
"네…… 그럼 내일."
손에는 아직 새우깡이 들려 있었다. 웨이린은 어느덧 사라졌다. 태준은 맥주와 과자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왔다. 승필이 한참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야, 맥주를 만들러 갔다 왔냐?"
"어쭈, 칭다오 맥주. 멀리도 갔다 왔네." 경환이가 놀리듯 말했다. 칭다오는 상하이보다 위쪽이고 바닷가라 해산물이 어떻고, 경환이가 떠들었다.
"해산물? 야, 상하이도 바다 아냐?" 승필이 물었다.
"그런가?" 경환이가 대답했다.
맥주는 냉장고에 없었지만 겨울이라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한 잔을 마셨다. 차가움이 목을 타고 내려왔다.
맥주 여섯 병을 다 마셨다. 승필이는 취기에 또 침대에 쓰러졌다. 태준은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달빛에 천장이 밝았다.
내일. 진짜 상하이.
웨이린을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지 다시 생각했다. 카페 앞, 점심때. 그런데 웨이린의 연락처가 없었다. 주고받지 않았다. 그냥 헤어진 것이었다. 내일 어떻게 만나지. 점심때. 중국 사람들은 점심을 몇 시에 먹는지 생각했다. 열한 시, 열두 시. 그러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