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37
목차
현재 · 태준

닮은 얼굴

노인 한명이 소리를 질렀다. 한 마리가 물러섰다. 누가 웃고 누가 손을 내저었다. 동전이 오갔다. 태준은 쪼그려 앉아 들여다봤다. 항아리 안에서 귀뚜라미 두 마리가 더듬이를 부딪치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때 동전을 쥐고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태준을 봤다. 처음엔 외국인이 신기해서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인은 항아리에서 손을 뗐다. 태준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무언가 말했다. 빠른 중국어였다. 옆에 있던 다른 노인들도 태준을 봤다.

"뭐라고 해요?" 태준이 웨이린에게 물었다.

웨이린이 노인에게 되물었다. 노인이 또 말했다. 길었다. 손짓을 섞었다. 웨이린이 듣다가 표정이 조금 변했다.

"닮았대요."

"누구랑요?"

웨이린이 노인의 말을 더 들었다. 천천히 옮겼다.

"옛날에 이 동네에 살던 사람이랑요. 한국 사람이었대요. 아주 오래전에. 자기가 어릴 때."

태준은 노인을 봤다. 여든은 넘어 보였다. 주름이 깊었다. 그 눈이 태준을 보고 있었다. 옛날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한국 사람이요?"

웨이린이 다시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말했다. 이번에는 짧았다.

"이름은 기억 안 난대요. 그냥 조선 사람. 말수가 적었고. 여기 살았데요."

노인이 태준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 자기 눈가를 짚었다. 또 무언가 말했다. 길게. 손짓이 많았다. 웨이린이 듣다가 한 번 되물었다. 노인이 다시 대답했다. 웨이린이 옮겼다.

"눈매가 똑같대요. 그 사람이랑." 웨이린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그 한국 사람이랑 친했던 이 동네에서 포목점 하던 사람이었대요. 리우라고."

리우. 태준은 알아듣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그냥 흘려들었다.

노인은 다시 항아리 쪽으로 돌아앉았다. 귀뚜라미가 다시 부딪쳤다. 노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방금 한 말은 그들에게 별일이 아닌 것 같았다.

태준에게만 남았다. 눈매가 똑같다는 말이.

골목을 나왔다. 웨이린이 말이 없었다.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방금 리우라고 했죠."

"네?"

"그 노인이. 리우라고."

"그런 것 같아요. 왜요."

표정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성이 리우예요."

태준은 멈췄다. 두 사람 다 잠깐 말이 없었다. 골목에 라디오 소리가 흘렀다.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였다.

"그럼……." 태준이 말을 골랐다. "그 한국 사람이랑 친했다는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일 수도 있어요. 이 동네에서 포목점 한 사람이 여럿은 아니었을 테니까."

웨이린이 골목 안쪽을 봤다. 무언가 떠올리는 것 같았다.

"집에 상자가 하나 있어요." 웨이린이 천천히 말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에 나온 거.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한 번도 제대로 안 열어봤어요."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얼 묻고 싶은지도 정리되지 않았다. 닮았다는 말, 리우라는 이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상자. 그것들이 아직 이어지지 않은 채 따로 떠 있었다.

"볼래요?" 웨이린이 물었다. 태준이 조른 게 아니었다. 웨이린이 먼저였다.

"……봐도 돼요?"

웨이린이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가요. 집에."

웨이린의 집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낡은 철문을 열었다. 안은 어두웠다. 할머니는 안 계셨다. 병원에 가셨다고 했다.

웨이린이 선반에서 상자를 내렸다. 낡은 나무 상자였다. 모서리에 손때가 묻어 색이 바랬다. 탁자에 올렸다. 뚜껑을 열었다.

오래된 냄새가 났다. 종이가 습기를 머금었다가 마르기를 여러 번 반복한 냄새.

상자 안에는 물건이 많지 않았다.

천 조각 하나. 빛이 바랜 파란색이었다. 접혀 있었다. 가까이 보니 단추 구멍이 있었다. 옷의 일부였다. 어떤 옷인지는 몰랐다. 군복 같은 것의 일부인 것 같기도 했다. 옆에 작은 금속 단추가 두 개 있었다. 녹이 조금 슬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작고 무거웠다. 이 단추가 어떤 옷에 달려 있었는지. 그 옷을 어떤 사람이 입었는지.

종이 뭉치가 있었다. 얇은 종이들이 접혀서 함께 묶여 있었다. 한자였다. 태준은 한자를 읽지 못했다.

그리고 봉투가 하나 있었다. 노란색이었다. 정확히는 원래 하얀 봉투가 시간이 지나 노랗게 된 것이었다. 봉투 앞면에 한자가 적혀 있었다. 가벼웠다. 안에 납작한 것이 있었다.

"열어봐도 돼요?"

웨이린을 돌아봤다. 웨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투 뒷면 접힌 부분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 사진이 있었다. 꺼냈다.

흑백 사진이었다. 작은 판형, 세로로 긴 사진. 사람이 셋 있었다. 남자 셋. 모두 어두운 색 옷을 입고 있었다.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낡은 벽돌 건물. 셋 다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웃지 않았다. 그 시절 사진들이 다 그랬듯이.

태준은 세 사람 얼굴을 천천히 봤다. 왼쪽 남자. 오른쪽 남자. 가운데 남자.

가운데 남자에서 시선이 멈췄다.

멈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낯선 사람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걸렸다. 턱 선이었는지, 눈 간격이었는지. 무언가 자기에게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 그 얼굴에 있었다. 거울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훨씬 희미한. 아주 멀리서 오는 것 같은.

귀뚜라미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떠올랐다. 눈매가 똑같다고 했다. 자기 눈가를 짚던 손.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 글씨가 있었다. 한자가 먼저 있었다. 그 아래에 다른 글씨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다른 시기에 적은 것 같았다. 잉크 색이 달랐다. 한국어였다.

손으로 흘려 쓴 글씨였다. 오래되어 번진 부분도 있었다. 천천히 읽었다.

박성재.

세 글자였다.

태준은 그 세 글자를 다시 읽었다.

박. 성. 재.

박.

손이 조금 떨렸다. 자기도 몰랐는데 사진을 든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박은 태준의 성이었다. 한국에서 흔한 성이었다. 전국에 박씨는 널리고 널렸다. 이 사람이 자기와 관련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가운데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웨이린이 다가왔다. 태준 옆에 서서 사진을 봤다.

"뒷면에 한국어예요?"

"네."

"뭐라고 읽어요?"

"박성재."

웨이린이 발음을 천천히 따라 했다. 박성재.

"이름이에요?"

"이름 같아요."

웨이린이 사진 앞면을 봤다. 세 남자를 봤다.

"할아버지가 왜 이 사진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요." 웨이린이 말했다. "할머니한테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하셨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신 뒤에 나온 거라."

태준은 사진을 봤다. 가운데 남자의 얼굴을 봤다. 아까 노인이 닮았다고 한 사람. 리우와 친했다는 한국 사람. 그리고 리우는 웨이린의 할아버지. 그 한국 사람의 사진이 리우의 상자 안에 있었다. 이어지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맞물리고 있었다.

"몇 년도 사진인지 알아요?"

"몰라요. 한자에 날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웨이린이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천천히 펼쳤다.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오래된 글씨체라 잘 읽히지는 않는데." 잠깐 멈췄다. "1943년."

태준은 그 숫자를 머릿속에 놓았다. 일제강점기. 해방이 1945년이었다. 그러니까 해방 이 년 전. 상하이. 한국 이름. 박성재.

폰이 울렸다. 경환이었다.

"야 우리 지금 나오는데 저녁 같이 먹자. 어디야?"

태준은 폰을 봤다가 사진을 봤다가 다시 폰을 봤다.

"나 좀 늦을 것 같아. 먼저 먹어."

"어디 있는데?"

"그냥 돌아다니고 있어."

답장을 보내고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 사진."

"좀 찍어도 돼요?"

웨이린이 잠깐 태준을 봤다.

"왜요."

"그냥. 좀 이상한 느낌이 있어서요."

웨이린이 태준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찍어요."

태준이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앞면. 뒷면. 박성재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혔다. 찍고 나서 화면을 들여다봤다. 한 번 더 봤다.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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